『산경표』에 나타난 산맥 체계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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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강 댓글 0건 조회 84,539회 작성일 18-07-31 10:40본문
『산경표』에 나타난 산맥 체계의 특징
『산경표』에 나타난 산맥 체계의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산줄기의 맥락과 명칭을 체계화하였으니, 산줄기를 1개의 대간과 1개의 정간, 13개의 정맥으로 분류하고 이름을 부여하였다. 신경준의 「산수고」나 『동국문헌비고』의「여지고」에도 산의 갈래와 흐름을 이야기하였으나 이처럼 일목요연하게 15개의 줄기로 나누고, 산줄기의 이름을 뚜렷하게 부각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산줄기의 명칭 부여 등 체계화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여러 지도와 글들이 산견된다. 성호 이익(星湖 李瀷)이 쓴 『성호사설(星湖僿說)』권1 「천지문(天地門)」에 '백두산은 우리나라 산맥의 조종이다…대체로 일직선의 큰 산맥이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중간에 태백산이 되었고 지리산에서 끝났으니…' 라 하여 ‘백두정간(白頭正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는데, 『산경표』의 ‘백두대간’과 일치하지는 않으나 ‘정간’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광여도(廣輿圖)》등 조선 후기의 지도첩들에는 ‘대맥(大脈)’. ‘내맥(內脈)’. 낙맥(落脈)‘ 등의 표현도 보인다.
둘째, 산맥의 체계가 하천의 수계(水系)를 기준으로 나누어져 있는 점이다. 산줄기의 이름이 그것을 잘 보여주는데, 청북정맥과 청남정맥은 청천강을, 청남정맥과 해서정맥은 대동강을, 해서정맥과 임진북례성남정맥은 예성강을, 임진북례성남정맥과 한북정맥은 임진강을, 한북정맥과 한남정맥은 한강을, 금북정맥과 금남정맥은 금강을, 호남정맥은 영산강과 섬진강을 구분하는 등 주요한 하천이 기준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백두대간과 장백정간은 하나의 하천 수계를 기준으로 나눈 것이 아니라, 지금의 함경산맥 이남과 태백산맥 동측의 작은 하천들을 나누는 구분선으로 대간(大幹)과 정간(正幹)으로 명칭을 부여하여 하나의 하천 유역권을 기준으로 이루어진 정맥(正脈)과 구분하였다.
실제로 산줄기의 맥을 파악하려 할 때 물줄기는 그 기준이 된다. 성호 이익(星湖 李瀷)도,
대개 백두산의 큰 줄기가 바다를 끼고 남쪽으로 달리는 사이, 철령(鐵嶺)은 부관(北關)의 좁고 험한 곳이 되었고 조령(鳥嶺)은 동남쪽의 높고 험한 곳이 되었는데, 철령 이북으로부터는 산세가 다 서쪽으로 달려 그 맥락을 찾으려면 반드시 물을 의지하여야만 그 줄기를 알 수가 있다. …두 줄기 물 사이에는 반드시 한 줄기의 산이 있는데, 이른바 청석령(靑石嶺)이라는 한 줄기는 서강과 저탄 사이에 있어 경기도와 황해도의 경계가 되어 있고, 정방역(正方域)의 한 줄기는 저탄과 대동강 사이에 있어 황해도와 평안도의 경계가 되고 있다.
고 하여, 산줄기의 맥은 물줄기에 의거해서 찾을 수 있음을 이야기한 바 있다.
자연적으로 구분된 단위인 수계(水系) 또는 하천(河川)이 지역을 격리시키는 역할을 하는 반면에, 동시에 지역을 상호 연계시켜 주는 통로의 구실을 하는 양측면이 있음은 흔히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면 섬진강의 양안, 즉 경상도의 하동과 전라도의 구례나 광양은 양 지역의 문화나 생활양식 혼합되어 점이적인 성격을 보이고, 시장의 이용 등에서 교류가 빈번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수계가 기준이 되었다는 것은 산줄기를 산줄기만으로 분리시켜 고찰했다기보다, 하천을 중심으로 하나의 생활권 내지 지역권을 형성하고 있었던 인문적인 측면까지 고려했던 결과라 생각된다. 이는 동양의 전통적인 자연관 즉 자연과 인간을 분리시키지 않고 유기적인 통합체로 보는 사고와도 결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대간, 정간, 정맥 등으로 산줄기에 위계성(位階性)을 부여한 점이다. 간은 줄기이고, 맥은 줄기에서 흘러나간 갈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위계적 차별성은 산이나 산맥의 크기와 높이, 넓이 등 물리적인 외형상의 차이에서 기본적으로 연유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물과 현상을 계층성과 차별성을 두었던 중세적인 사유, 성리학적인 사유구조에서 말미암은 자연의 분류체계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넷째, 산과 산의 분포, 위치를 줄기 또는 맥으로 파악하여 끊어짐이 없이 이어지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산들이 연속되어 이어지는 현상을 산맥으로 지칭하는 것은 오늘날도 다름이 없으나, 『산경표』에 나타난 간과 맥들은 단절이 없다. 마치 혈맥이 뻗어나가 서로 통하듯이 모든 산줄기가 연결되어 있고, 산줄기와 산줄기의 결절점에 주요 산이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산맥 체계는 지질구조를 중심으로 하여 파악한 것이기 때문에 산맥사이의 연결관계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에 따라 개별 산맥들이 연속되어 있지 않고 병렬적으로 존재하며, 특히 북쪽과 남쪽의 지질구조가 달라 남북한의 산맥들은 연속되지 않고 단절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중요한 차이점을 내포하고 있다. 맥으로 연결된 땅들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존재이며 크게 보면 하나의 뿌리를 가진 공동체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산맥 분류는 한반도를 하나의 공동체적인 뗄 수 없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질적인 기원과 성격을 가진 개체들의 집합으로 국토를 바라보도록 되어 있다.
다섯째, 백두산이 국토의 중심 또는 출발점으로 인식되어 있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국왕이 거주하는 수도를 국토의 중심으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신경준의『산수고』는 백두산을 중시하면서도 중심을 한양(漢陽)에 두고 있었다. 산의 줄기를 중심으로 본 『산경표』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지역 인식을 체계화하고 정당화하는 논리적인 작업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산경표』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산맥을 체계화한 산 중심의 인식 체계를 제시하였으나 이와 같은 산맥 분류 체계는 강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 『한국사 시민강좌』14집 「조선시대의 자연 인식 체계」(양 보경 글)에서 부분 발췌.
『산경표』에 나타난 산맥 체계의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산줄기의 맥락과 명칭을 체계화하였으니, 산줄기를 1개의 대간과 1개의 정간, 13개의 정맥으로 분류하고 이름을 부여하였다. 신경준의 「산수고」나 『동국문헌비고』의「여지고」에도 산의 갈래와 흐름을 이야기하였으나 이처럼 일목요연하게 15개의 줄기로 나누고, 산줄기의 이름을 뚜렷하게 부각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산줄기의 명칭 부여 등 체계화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여러 지도와 글들이 산견된다. 성호 이익(星湖 李瀷)이 쓴 『성호사설(星湖僿說)』권1 「천지문(天地門)」에 '백두산은 우리나라 산맥의 조종이다…대체로 일직선의 큰 산맥이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중간에 태백산이 되었고 지리산에서 끝났으니…' 라 하여 ‘백두정간(白頭正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는데, 『산경표』의 ‘백두대간’과 일치하지는 않으나 ‘정간’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광여도(廣輿圖)》등 조선 후기의 지도첩들에는 ‘대맥(大脈)’. ‘내맥(內脈)’. 낙맥(落脈)‘ 등의 표현도 보인다.
둘째, 산맥의 체계가 하천의 수계(水系)를 기준으로 나누어져 있는 점이다. 산줄기의 이름이 그것을 잘 보여주는데, 청북정맥과 청남정맥은 청천강을, 청남정맥과 해서정맥은 대동강을, 해서정맥과 임진북례성남정맥은 예성강을, 임진북례성남정맥과 한북정맥은 임진강을, 한북정맥과 한남정맥은 한강을, 금북정맥과 금남정맥은 금강을, 호남정맥은 영산강과 섬진강을 구분하는 등 주요한 하천이 기준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백두대간과 장백정간은 하나의 하천 수계를 기준으로 나눈 것이 아니라, 지금의 함경산맥 이남과 태백산맥 동측의 작은 하천들을 나누는 구분선으로 대간(大幹)과 정간(正幹)으로 명칭을 부여하여 하나의 하천 유역권을 기준으로 이루어진 정맥(正脈)과 구분하였다.
실제로 산줄기의 맥을 파악하려 할 때 물줄기는 그 기준이 된다. 성호 이익(星湖 李瀷)도,
대개 백두산의 큰 줄기가 바다를 끼고 남쪽으로 달리는 사이, 철령(鐵嶺)은 부관(北關)의 좁고 험한 곳이 되었고 조령(鳥嶺)은 동남쪽의 높고 험한 곳이 되었는데, 철령 이북으로부터는 산세가 다 서쪽으로 달려 그 맥락을 찾으려면 반드시 물을 의지하여야만 그 줄기를 알 수가 있다. …두 줄기 물 사이에는 반드시 한 줄기의 산이 있는데, 이른바 청석령(靑石嶺)이라는 한 줄기는 서강과 저탄 사이에 있어 경기도와 황해도의 경계가 되어 있고, 정방역(正方域)의 한 줄기는 저탄과 대동강 사이에 있어 황해도와 평안도의 경계가 되고 있다.
고 하여, 산줄기의 맥은 물줄기에 의거해서 찾을 수 있음을 이야기한 바 있다.
자연적으로 구분된 단위인 수계(水系) 또는 하천(河川)이 지역을 격리시키는 역할을 하는 반면에, 동시에 지역을 상호 연계시켜 주는 통로의 구실을 하는 양측면이 있음은 흔히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면 섬진강의 양안, 즉 경상도의 하동과 전라도의 구례나 광양은 양 지역의 문화나 생활양식 혼합되어 점이적인 성격을 보이고, 시장의 이용 등에서 교류가 빈번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수계가 기준이 되었다는 것은 산줄기를 산줄기만으로 분리시켜 고찰했다기보다, 하천을 중심으로 하나의 생활권 내지 지역권을 형성하고 있었던 인문적인 측면까지 고려했던 결과라 생각된다. 이는 동양의 전통적인 자연관 즉 자연과 인간을 분리시키지 않고 유기적인 통합체로 보는 사고와도 결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대간, 정간, 정맥 등으로 산줄기에 위계성(位階性)을 부여한 점이다. 간은 줄기이고, 맥은 줄기에서 흘러나간 갈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위계적 차별성은 산이나 산맥의 크기와 높이, 넓이 등 물리적인 외형상의 차이에서 기본적으로 연유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물과 현상을 계층성과 차별성을 두었던 중세적인 사유, 성리학적인 사유구조에서 말미암은 자연의 분류체계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넷째, 산과 산의 분포, 위치를 줄기 또는 맥으로 파악하여 끊어짐이 없이 이어지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산들이 연속되어 이어지는 현상을 산맥으로 지칭하는 것은 오늘날도 다름이 없으나, 『산경표』에 나타난 간과 맥들은 단절이 없다. 마치 혈맥이 뻗어나가 서로 통하듯이 모든 산줄기가 연결되어 있고, 산줄기와 산줄기의 결절점에 주요 산이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산맥 체계는 지질구조를 중심으로 하여 파악한 것이기 때문에 산맥사이의 연결관계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에 따라 개별 산맥들이 연속되어 있지 않고 병렬적으로 존재하며, 특히 북쪽과 남쪽의 지질구조가 달라 남북한의 산맥들은 연속되지 않고 단절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중요한 차이점을 내포하고 있다. 맥으로 연결된 땅들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존재이며 크게 보면 하나의 뿌리를 가진 공동체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산맥 분류는 한반도를 하나의 공동체적인 뗄 수 없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질적인 기원과 성격을 가진 개체들의 집합으로 국토를 바라보도록 되어 있다.
다섯째, 백두산이 국토의 중심 또는 출발점으로 인식되어 있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국왕이 거주하는 수도를 국토의 중심으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신경준의『산수고』는 백두산을 중시하면서도 중심을 한양(漢陽)에 두고 있었다. 산의 줄기를 중심으로 본 『산경표』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지역 인식을 체계화하고 정당화하는 논리적인 작업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산경표』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산맥을 체계화한 산 중심의 인식 체계를 제시하였으나 이와 같은 산맥 분류 체계는 강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 『한국사 시민강좌』14집 「조선시대의 자연 인식 체계」(양 보경 글)에서 부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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