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산마을>13. 강원도 정선군 북면 여량리 > 백두대간 산마을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백두대간 산마을

<백두대간 산마을>13. 강원도 정선군 북면 여량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안강 댓글 0건 조회 181,883회 작성일 18-12-27 14:22

본문

정선(旌善)은 사방이 산과 물이다.그래서 인지 정선 땅에 들어서면 왠지 아늑하다.야트막한 집과 건물 뒤로 산들이 빙둘러 서있는 것이 마치 고향 땅에 온 듯 포근해진다.한국 산수(山水)의 전형이 있다면 정선이 그런 곳이다.
여량리(餘糧里.강원도 정선군 북면)는 「아우라지」와 「정선아리랑」이 있어 더욱 정이 가는 산마을이다.
아우라지는 두 갈래 물이 한데 모여 어우러지는 합수(合水)머리를 말한다.여량의 아우라지는 북쪽의 구절리에서 흘러오는 송천과 남동쪽 임계에서 흘러오는 골지천이 만난다.돌이 많아 거칠게 흐르는 구절천은 숫물(陽水)이라 부르고 잔잔한 골 지천은 암물(陰水)이라 부른다.여름장마 때 숫물이 거세면 대홍수가 나고 암물이 많으면 장마가 그친다고 한다.여량리의 아우라지는 조양강을 이뤄 영월로 흘러간 뒤 남한강의 상류가 된다.
여량리의 아우라지는 폭이 좁아 겉보기엔 얕아 보이지만 실상은 깊다.수량이 많지 않을 때도 수심이 5를 웃돈다.그래서 아직도 나룻배가 다닌다.나룻배는 삿대를 저어가는 배가 아니다.강물 위에 매어놓은 쇠줄을 당겨 지나가는 배다.뱃사공 이 범태(67)씨는정선아리랑 한 자락을 청하면 싫은 내색없이 구수하게 읊어준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소,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李씨는 지난해 7월 뱃사공을 맡았다.외지생활을 오래하다 고향이 그리워 여량에 돌아왔는데 오자마자 뱃사공이 됐다.10년전에 1년간 뱃사공을 했던 것이 도움이 된 듯 싶다.
뱃사공은 힘들고 돈도 별로 못 번다.오전6시부터 여량역에 마지막 기차가 들어오는 오후7시까지 일해야 한다.노동시간이 하루13시간인 셈이다.또 3백65일 하루도 쉴 수 없다.
다른 고장 사람들에겐 한번 건널 때 5백원을 받지만 정선사람은 무료다. 『어떨 땐 하루 벌이가 5백원이더라구.좋아서 맡았지.아직 근력도 있고 말야.그래도 여름철에 관광객이 많이 올 땐 수입도 적은 편은 아냐.』뱃사공 李씨는 마냥 즐겁다.
즐거운 이유 중엔 도시생활과는 달리 마음껏 정선아리랑을 부를 수 있다는 이점도 들어 있다.정선 사람치고 정선아리랑 한 곡 못하는 사람은 없다.6백년전 조선 초기에 시작된 정선아리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
정선 사람들은 그때 그때의 감정을 속임없이 가락에 맞춰 불렀다.정선의 경치는 물론 애정.이별.수심(愁心).고부관계 모든 것이 정선아리랑의 소재가 되고 가락이 됐다.뗏목이 다닐 때는 뗏목생활의 애환이 소재가 됐다.
『1천5백여수는 될거야.더 많을 지도 모르지.내가 부를 줄 아는 노래는 7백,8백수쯤 돼.』여량리에 사는 정선아리랑 전수장학생 김남기(60)씨의 설명이다.
정선에서 아리랑은 옛 노래가 아니다.아직도 완성되지 않고 계속 만들어지는 오늘의 노래다.

  볼거리 먹거리
여량리 근처에는 볼거리가 많다.아우라지와 나룻배를 비롯해 87년 세운 아우라지 처녀상이 눈길을 끈다.
여량리가 속해 있는 북면의 노추산(1천3백22)에서는 설총과 율곡이 공부하던 이성대가 볼만하다.신선바위와 높이가 수십에 달하는 오장폭포도 장관이다.
북면과 인접해 있는 북평면의 가리왕산(1천5백61)은 등산코스로 유명한 데 고산식물인 주목과 각종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가리왕산의 숙암계곡 오대천변에 피는 철쭉도 절경이다.가리왕산 회동계곡엔 자연휴양림((0398)63-1544)이 조성돼 있어 숙박할 수 있다.숙암관광안내소 인근에 있는 샘물식당((0398)63-5588)의 초두부.닭도리탕.산채백반이 맛있다.
정선의 별미음식인 표고죽을 먹으려면 향림식당((0398)62-2358)을 권하고 싶다.쇠고기맛과 비슷하며 비타민D가 많다고 한다.

  <산사람>가목리 메주공장 돈연 스님
돈연(頓然.47)스님은 백봉령 기슭(정선군 가목리)에서 메주공장을 운영한다.
〈사진〉 스님과 메주공장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돈연스님에게는 이상하리만치 잘 어울린다.돈연스님에겐 밭이 선방이요,쟁기가 목탁이고,메주가 법문이다.그는 88년 가목리에 정착해 메주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무척 일이 하고 싶더라구.그래서 가목리를 찾았는데 마을 주민들이 겨울철에는 모두 놀아.겨울철에 할 수 있는 농사일이 뭔가 하고 연구하다 시작한 것이 메주공장이야.』 돈연스님은 『벽암록』『순례자의 노래』『산사의 하루』 등 시와 산문집을 발간,그 수익금을 공장운영비로 사용하기도 한다.
메주만드는 작업에는 가목리 주민 10여명도 참가한다.농민들에게 부업을 찾아주겠다는 스님의 의지 때문이다.지역 주민들이 직접 투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메주공장을 운영하는 동안 스님 개인에게도 큰 변화가 있었다.
그는 93년 서울대 음대를 나온 첼리스트 도완녀(42)씨와 결혼했다.결혼과 함께 조계종과의 인연은 사실상 끝난 셈이다.그러나 스님이기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조그만 초암 을 짓고 수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부인 도씨는 강릉에서 첼로 독주회를 간혹 연다.하지만 산골 노인들의 회갑연 등에서 하는 무보수 첼로연주를 더 좋아한다.남편의 영향 때문이다.돈연스님이 가목리 농민들과 힘을 합쳐 만드는 메주와 된장.간장은 인기가 좋다.임계에서 나는 질 좋은 햇콩에 「정성」까지 담으니 맛이 좋지 않을 리 없다.메주를 고정적으로 사먹는 회원만 8백명이 넘는다.
돈연스님이 만드는 메주는 「정선토종메주」((0398)62-2710)란 상표로 팔린다.올해는 햇콩 6백가마로 메주를 만들었다.스님은 『97년까지 2천가마를 해보겠다』며 껄껄 웃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접속자집계

오늘
304
어제
2,165
최대
4,511
전체
1,300,354

그누보드5
Copyright © Angang.com All rights reserved.